올해 초 일본 아사히신문은 94세인 사토 히데씨 사례를 소개하면서 “경이롭다”고 보도했다. 작년 9월 일본 동북 지방의 이와테현 한 보건소 건강검진에서 기초 대사량으로 측정하는 체내(體內) 연령이 36세로 나온 것이다. 혈관 연령은 20세였다. 그는 키 163㎝, 체중 63.5㎏으로 평균적인 체형이지만, 그의 생체 나이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사진=성호철, 그래픽=김의균

사토씨의 평균 체질량 지수(BMI)는 23.9, 체지방률 25%, 근육량은 44.6㎏이다. 건강한 30대 여성의 신체다. 보건소 측은 기계 이상을 의심하고 서너번 체크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지난달 30일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500㎞ 떨어진 이와테현에서 사토 히데씨를 만났다.

‘구구팔팔(99세까지 팔팔하자 살자)의 비밀을 묻기 위해 왔다’는 이야기에 사토씨는 “아직 백 살도 안 됐다”면서 웃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라디오를 들으며 체조하고 낮에는 재봉틀에서 손을 움직이며 인형을 만들거나 옷을 리폼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을 때엔 글씨가 빼곡한 잡지를 나안(裸眼)으로 읽는다. 엘리베이터는 안 타고 계단을 걸어 다닌다. 매일 고기·생선 같은 단백질을 섭취한다. 튀김은 싫어하지만 야채·과일을 좋아한다. 밤 11시쯤 자는데, 그 직전 목욕하면서 물속에서 발차기를 500회씩 한다.

사토씨는 “동일본 대지진 때 10미터 넘는 쓰나미가 동네를 덮쳐 친척 7명이 죽었다”면서 “소녀 시절이던 1945년엔 폐허가 된 도쿄에서 풀죽도 먹어봤고, 삶의 처참함을 겪어봤다. 이를 통해 난 삶의 고귀함을 배웠다”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일본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市)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자 “하~이” 하고 높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1930년 7월생인 사토 히데씨다. 올해 나이가 94세지만, 체내 연령은 36세로 측정돼 올해 초부터 일본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그가 혼자 사는 임대아파트엔 먼지 하나 없었다. 사토씨는 “매일 혼자 세 끼 식사를 차리고 설거지하고 청소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가족과 사는 70·80대 노인들을 보면, 가족들이 자꾸 대신 뭔가 해주니 본인은 움직이지 않게 되고 금방 쇠약해진다”면서 “나는 혼자 다 해야 하다 보니 계속 움직여서 덕분에 건강한 게 아닐까”라고 했다. 두 시간가량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사토씨는 쉴 새 없이 말하며 다과를 내놓고, 사진이나 잡지를 보여주는 등 끊임없이 움직였다.

-94세인 당신에게 인생이란.

“81세에 동일본대지진을 만났다. 이때 삶을 찬찬히 다시 생각했다. 당시 (쓰나미로) 친척만 7명이 죽었다. 조카딸도 죽었는데 뭔가 하고 싶었다. 헝겊을 꿰매 인형을 만들어 죽은 조카의 엄마에게 건넸더니, 펑펑 울더라. 인형을 딸로 본 것이다. 이후엔 줄곧 인형을 만들어 주변에 나눠주고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이다. 즐겁다. 주변 사람들과도 항상 즐겁게 살고 있다. 그러니 나중에 나 죽어도, 제발 고독사(孤獨死)라고 쓰지 마라. 왜 그게 고독사냐.

1945년 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불에 타 폐허가 된 도쿄를 봤다. 큰 냄비에 풀죽을 끓여 그릇에 나눠 먹었다. ‘산다는 것’의 참담함을 봤고, 산다는 것의 고귀함도 동시에 느꼈다.”

-하루 일과는.

“매일 6시에 일어난다. 방 침구를 정리하고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해 놓곤, 6시 반에 NHK 라디오방송에 맞춰 ‘라디오 체조(우리나라의 국민체조와 유사)’를 한다. 천천히 아침 먹고, 꼭 NHK 아침 드라마를 본다. 9시 30분부턴 인형 만들기를 시작한다. 집 안 정리는 매일 한다. 2~3일에 한 번 청소기도 돌린다. 식사는 매일 세 끼를 직접 만들어 먹는데, 꽤 많은 양을 먹는다(웃음). 매주 두 번씩 장을 볼 때마다 채소를 무척 많이 산다. 아침엔 밥·국에 생선·고기를 먹고, 낫토(콩 발효식품)도 먹는다. 잠은 밤 11시쯤에 잔다. 자기 직전인 밤 10시쯤 목욕하면서 물속에서 발차기를 500회 정도 한다.”

 

-단백질을 매일 먹나.

“생선과 고기는 꼬박꼬박 먹는다. 생선은 말린 걸 사서 냉동해 놓는다. 보통은 구워서 먹는다. 기름으로 튀긴 생선은 별로 안 좋아해서다.”

-별도로 하는 운동은.

“특별한 운동은 하지 않지만 여기가 2층이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내과 의사 선생님은 100세까지 살려면 6층 정도의 계단은 올라가야 한다는데, 집은 2층이라서 그건 무리다. 산책은 집 근처를 왔다 갔다 한다. 큰길로도 산책을 가고 싶은데, (그곳엔) 중간에 앉아서 쉴 벤치가 없어서 못 가고 있다. ‘나의 늙음’을 이럴 땐 조금 실감한다.”

-병원은 정기적으로 가나.

“매주 금요일 데이 서비스(주간 보호 서비스)에 간다. 70세 때 치매가 온 조카며느리를 데리고 다닌다. 데이 서비스에선 체온을 재주고 가벼운 체조도 하고, 종이접기 같은 뇌 운동도 하고 많이 배운다. 낮엔 자유 시간인데, 다른 노인들은 낮잠 자거나 수다를 떨지만, 난 시간이 아까워서 이 시간엔 옷 리폼을 배운다. 88세쯤부터 새롭게 시작한 일이다.”

사토씨는 방에 가지런히 걸린 열 벌가량의 현대식 기모노를 가리켰다. “기모노를 리폼한 것이다. 옛날 재봉틀은 발을 사용하는데 요즘 재봉틀은 그게 없더라. 지인들이 놀러오면 꼭 입어본다. 달라고 하면 준다. 재밌어서 이렇게 자꾸 새로운 걸 배운다. 리폼한 옷은 간혹 팔아서 커피 값 등에 쓴다.”

-잠은 금방 드나.

“이불 속에서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을 5번씩 한다. 체형 교정 선생님이 가슴을 활짝 펴는 게 좋다고 해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호흡하자마자 곧장 잠든다. 밤에 간혹 깨기도 하지만 화장실에 갔다와서 다시 잠에 잘 드는 편이다. 하루 7시간쯤 잔다. 자기 전 휴대폰은 하지 않고, 커튼을 쳐서 어둡게 해놓고 잔다.

-신문·잡지 읽는 것도 좋다던데.

“지치(致知)라는 월간지를 정기 구독한다. 배달 오면 그 자리에서 다 읽고, 나중엔 한가할 때 다시 읽는다. 재봉질할 마음이 없을 때, 조금 피곤할 때도 글을 읽는다. 잡지를 읽는 이유는 지식을 보충해 지인들과 즐겁게 대화하기 위함이다. 주변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전화도 자주 한다. 이야기 상대가 10명은 넘는다.”

-술·담배는 하는지.

“젊은 사람들과 종종 맥주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젊은 사람들이 맛있게 맥주를 마시니, 나도 마셔봤다. 요즘은 일주일에 2~3번 정도 저녁에 드라마 보며 한 캔씩 마신다.”

-몸무게는 일정한가. 건강 보조제도 먹는지.

“평생 60~65㎏을 유지하고 있다. 건강 보조제는 따로 먹지 않는다. 보조 식품보다 식사를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은가?

최근엔 난생처음 인스턴트 라면도 먹어봤다. 지인에게 재봉질한 옷을 줬더니 답례로 주더라. 맛있었다. 단, 염분이 많아, 국물은 안 마셨다. 우동·소바 먹을 때도 국물은 안 마신다. 내가 만든 된장국은 국물까지 마신다. 잘 아는 가게에서 산 좋은 된장이라서 괜찮다.

커피보단 차를 마시고, 과일은 매일 먹는다. 와인도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먹는다. 의사는 안 된다고 하지만 디저트도 먹는다. 맛있으니까(웃음).”

반응형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이제 나이가 들어  늙어 약하고 지저분해져 가는 대

너희들이 앞으로 더 많은 인내를 가지고 이해 해  주렴.

늙어서 음식을 흘리면서 먹거나 옷을 더럽히고,
옷도 잘 입지 못하게 되면
네가 어렸을 적 먹이고 입혔으며 항상 너를
예쁘게 꾸미려 했던 나의 마음과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미안하지만 참고 받아다오.

늙어서 말을 할 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
말하는 중간에 자르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다.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들려주지 않았니?
그리고 너의 그 끝없는 투정을
늘 웃으며 다독거리던 그 표정을 생각해 다오.

훗날에 혹시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면
너무 부끄럽게 하거나 타박하지는 말아다오.
수없이 핑계를 대면서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도망치던 너를목욕 시키려고 따라다니던
모습을 기억해 보아라. 끝내 물수건으로도
너를 닦여 깨끗하게 잠자리로 데리고 가던
물 젖은 그 손을 생각해 주렴.

혹시 새로 나온 기술을 잘 모르면
그 방법을 자상하게 가르쳐다오.
우리는 네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는지 아니?
상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법, 옷을 입는 법,
힘들 때 이겨내는 방법등...

점점 기억력이 약해져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거나
말이 막혀 대화가 잘 안될 때면 성급해 하지 말고
기억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좀 내어주지 않겠니?
그래도 혹시 기억을 못해도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다오.
너를 이해 시키려 애쓴 수많은 시간과
너로 인해 잠들지 못한 수많은 밤이 있었단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고,
말을 들어주는 네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또 음식 먹기를 싫어하거든
억지로 먹이려고 하지 말아다오
너가 먹기 싫어 하는 음식을
악을 써 가면서 먹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언제 먹어야 하는 지 혹은 먹지 말아야 하는 지는
잘 알고 있단다.

다리가 힘이 없고 쇠약하여 잘 걷지 못하게 되거든
걷는 것이 위험하지 않게 도와다오.
힘들게 움직여야 하는 것을 줄여 달라는 거다.
네가 뒤뚱거리며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우리가 한 것처럼 네 손을 빌려다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하면 우리에게 화내지 말아다오
너도 언젠간 우리를 이해하게 될 거다.

노인이 된 우리의 나이는
그냥 단순히 살아온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는 것이 투쟁이었고
사느냐 죽느냐며 사선을 많이도 넘어 왔단다.

참으로 힘든 세월 이었다.
그 삶을 지탱하느라 가슴에 박힌 수많은 응어리는
결국 나의 몫이고 또 갖고 지니고 있으니
때때로 탄식이 나오지 않겠느냐.

비록 우리가 너를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어도
우리는 부모로써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과
부모로써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뼈를 깎으며
이 한 몸 바쳐 최선을 다 했고

그 때 나의 마음은 정말로 진실어었다.

타박을 주더라도 조금만 더 참으면서
늙은 내 마음이 어떻게 상처를 입을 것인지
생각해 주면서 화를 낮춰 얘기해 주렴.
평생 너의 마음 만을 들여다 보면서
살아온 것의 일부분이라도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를 사랑한다.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반응형

비트코인(BTC) 가격이 1억원을 돌파했다. 올해 들어 65% 상승하고, 지난 1년 간 250% 상승했다.
11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오후 4시 30분 기준 1억원을 찍었다. 장중 최고가는 1억30만원을 기록했다. 빗썸에서도 이날 9979만9000원까지 올라 1억원 돌파를 코앞에 뒀다.
글로벌 마켓에서도 사상 최고가가 경신됐다.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5일 2021년 11월 10일의 전고점(6만8789달러)을 돌파한 데 이어 8일 7만달러 선을 넘어섰다.
비트코인은 지난달 28일 8300만원 선을 넘어서면서 2021년 11월 9일(8270만원)의 전고점을 돌파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국내 거래소에서 올해 초 5700만원대에 거래되다가, 두 달만에 75% 이상 급등했다.
비트코인의 강세에 힘입어 알트코인들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이더리움은 개당 560만 원 선을 넘어섰으며 솔라나·리플 등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 상승세는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계기로 대규모 기관 자금이 유입된 덕분으로 분석된다. 지난 1월 출시된 현물 ETF 10건에 지난달 말까지 70억달러 자금이 순유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비트코인 채굴량이 4년마다 절반씩 줄어드는 반감기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됐다. 반감기란 비트코인 채굴에 따른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기다. 새로 발행되는 비트코인의 양이 줄어들어 대표적 호재로 꼽힌다.
다만, 해외 거래소에서의 비트코인 가격 대비 국내 거래소 가격이 높음을 나타내는 '김치 프리미엄'이 6.7~6.8%로 확대된 만큼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응형

“100세가 된 것을 실감할 수가 없다. 앞으로도 건강에 유의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고 싶다.”

지난 3일 100번째 생일을 맞은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는 장수 비결에 대해 “무리하지 않고 자연체(自然体)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어로 자연체는 검도 등에서 양발을 적당히 벌리고 자연스럽고 부담 없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욕심 없이 마음이 편한 대로 사는 게 장수의 비결이란 의미다. 4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무라야마는 전날 일본 규슈 오이타시(市) 자택에서 가족·친지들과 함께 100세 생일을 맞았다.

일본 역대 총리 가운데 100세를 맞은 경우는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전 총리(1887~1990)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1918~2019)에 이어 무라야마가 세 번째다. 무라야마는 “일주일에 3회 데이케어 센터를 다니고 매일 2차례 산책과 체조를 계속하고 있다”며 “즐거움은 TV로 스모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관련 입장은 딱 한 줄 밝혔다. “일본이 언제까지라도 평화의 나라로 계속 있기를 바란다.”

1924년 3월 3일 오이타에서 태어난 무라야마는 1994년 6월~1996년 1월 일본 총리로 재직했다. 트레이드 마크는 흰 눈썹이다. 일본의 50주년 종전 기념일인 199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두고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을 언급한 ‘무라야마 담화’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0년 정계 은퇴 이후 낙향했다. 그가 일본의 보통 노인과 별반 차이가 없는 ‘자연체’의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2005년 자전거 접촉 사고 때다. 당시 여든한 살이었던 무라야마는 자전거를 타다가 시내 교차로에서 마주오던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자전거와 부딪쳤다.

사고는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됐지만 전직 총리가 경호원이나 비서도 전용 차량도 없이 자전거를 직접 타고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전직 일본 총리들은 은퇴 이후에도 특정 단체의 고문 등 직함을 갖고 도쿄 시내에 별도 사무실을 내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신장이 173㎝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1920년대에 태어난 일본인치고는 키가 꽤 큰 편이지만 타고난 강골 체력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3년간 자전거로 신문을 배달했고 열네 살 때 도쿄로 상경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고등학교 야간부를 다니면서 유도부 활동을 하긴 했지만 남들을 압도하는 체력을 갖고 있진 않았다고 한다. 부친이 50대 때 세상을 떴으니 장수 집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남다른 운동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규칙적으로 매일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을 꾸준히 이어왔다고 한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해 인근 공원과 주변을 빠르게 걷는 산책을 즐긴다. 공원에선 동네 노인들과 잡담을 하거나 라디오 체조를 한다.

라디오 체조는 NHK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과 구령에 맞춰 13가지 동작을 하는 운동이다. 남녀노소 모두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동작이며 온몸을 움직이는 운동이다. 매일 2시간씩 산책과 잡담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검소한 생활도 돋보인다.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과거 총리였다고 일반인과 다른 점은 하나도 없으며 그런 생활에 불편한 점도 없다”며 “멀리 갈 때는 가끔 택시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론 모두 자전거로 다닌다”고 했다.

여든여덟 살 때 백내장 수술 일화도 무라야마의 청빈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의사가 “가까운 곳과 먼 곳, 어느 쪽을 잘 보이도록 수술할지 택해야 한다”고 묻자 “마트에서 장 보는 데는 자전거가 중요하니까 먼 곳을 잘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답했다.

의사가 “추가 수술을 하면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모두 잘 보이게 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무라야마는 거절했다. 추가 수술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100만엔(약 900만원)이나 드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며 거절한 것이다.

그는 평범한 어촌 집안 11남매의 여덟째로 태어났다. 역대 일본 총리 대부분은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와 같은 유력 정치인 집안 출신인데 그의 부모와 친·인척 가운데 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 1987년 일본에서 총리 재산 공개 제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총리 가운데 가장 적은 재산을 신고한 총리이기도 하다.

회색 기와가 얹혀진 2층 목조 주택인 오이타 자택은 130년 된 집으로 시세가 수십만 엔 수준에 그친다고 한다. 총리 시절 “나는 연중무휴로 일하는 어부 출신이니 휴가는 필요 없다”고 했다가 “해외 다른 정부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주변 만류에 도쿄 근교 하코네 료칸(여관)으로 휴가를 간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한 일본 신문에 “‘지위가 높다고 자랑하지 않으며, 가난해도 사상을 팔지 않는다’라는 중국 글귀를 좋아한다”고 적은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우연이 이어진 인생’이라고 표현한다. 욕심 없는 성격인데 대학 졸업 후 사회운동을 하다 보니 오이타 시의원, 현의원, 중의원을 거쳐 사회당 위원장이 됐다가 총리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는 총리 시절 “전혀 내 의지가 아니라 하다 보니 우연의 연속으로 총리가 됐다”며 “총리가 된 이상 전력을 다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무라야마 담화’도 그런 신념 속에서 나왔다. 후일 그는 “당시 (패전) 50년이 됐는데 지금 반성하지 않으면 다시 때가 안 올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의 모교인 메이지대학의 교우회장 등은 지난달 23일 무라야마를 찾아 100세 생일 선물을 증정했다. 생일인 3월 3일마다 발행된 100년 치 신문이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1924년 일본 오이타현의 어촌에서 태어났다. 메이지대 정치경제학과에 다니다 2차 대전에 강제 동원 및 징집됐다. 일본 사회당 소속으로 시의원, 현의원, 중의원을 지냈다. 자민당 등과 연립을 통해 1994년 6월부터 1996년 1월까지 총리를 지냈다. 일본의 패전 50년인 1995년 8월 15일,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현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반응형

'인생2막 근육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늙어 감을 지켜보는 자식에게  (0) 2024.06.12
풀쩍 뛴 비트코인  (0) 2024.03.12
고혈압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식품  (0) 2024.02.23
진정한 우정  (0) 2022.11.27
우생마사(牛生馬死)  (0) 2022.04.13

소금 섭취를 줄이는 것보다 바나나 등 칼륨이 많이 들어 있는 식품 섭취를 늘리는게 고혈압 환자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1일(현지시간)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조지 국제보건연구소(GIGH) 연구팀이

매일 1g의 칼륨을 추가로 섭취하는 것이 고혈압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1g 칼륨은 중간 크기의 바나나 2개, 시금치 한 컵, 큰 고구마에 들어 있는 양이다.

연구팀은 지난 2021년 중국에서 5년간 2만995명을 대상으로 소금 대체품과 뇌졸중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논문 자료를 토대로 분석작업을 했다.

연구팀은 연구 참가자의 절반에 대해, 요리 등에 일반적인 소금을 사용하게 하고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4분의 1을 염화칼륨으로 대체한 소금을 사용하게 한 뒤 나타난 혈압 변동치를 기록한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그 결과 칼륨이 다량 포함된 소금을 사용한 집단의 참가자들에게서 혈압이 낮아지고

뇌졸중과 심장질환 발생 위험이 하락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혈압 하락분의 80% 정도는 소금 섭취 축소가 아닌 늘어난 칼륨 섭취 때문으로 나타났다면서

매일 칼륨 섭취량을 1g 늘리면 수축기 혈압이 2mmHg만큼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논문의 제1 저자인 GIGH의 폴리 황 박사는 염화나트륨 과다와 칼륨 부족

모두 고혈압과 뇌졸중, 심장질환, 조기사망 위험과 연관이 있다면서 염화칼륨이 들어간

소금 대체품을 사용하면 이런 위험을 즉각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반응형

'인생2막 근육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쩍 뛴 비트코인  (0) 2024.03.12
100세의 삶이 꿈인가?  (1) 2024.03.05
진정한 우정  (0) 2022.11.27
우생마사(牛生馬死)  (0) 2022.04.13
70세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  (0) 2022.03.06

진정한 우정

두 친구가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자 서로를 격려했다.

한 친구가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한 친구는 몇 년동안 과거에 낙방하여

빈궁하게 살았다. 먼저 급제하여 지방수령으로 있는 친구에게 양식이라도

도움을 받고자 찾아갔는 데 그토록 다정했던 친구가 반기지를 않았다.

그리고 도움의 요청을 거절해 버렸다. 분하고 원통한 마음에 열심히 공부하여

결국 과거에 급제하였다. 금의환향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수령으로 있던

친구가 축하하러 와 있었다.

낙방한 친구를 분발시켜 공부하게 하느라고 그토록 매정하게 굴었고

공부하는 동안에 집안의 양식을 몰래 대주고 돌봐 주었던 것이었다.

금란지교 라는 말은 친구사이가 너무 친밀하여 그 사귐이 쇠보다 굳고

그 향기가 난초의 향 같이 짙다는 뜻이다. 우선 즐겁게 놀아 주는 친구가

좋을 듯 하나 진정한 친구는 뜻으로 통하고 친구를 위함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현명함과 친구의 마음을 편하게 하여

앞길을 열어주는 심지가 굳은 사람일 것이다.

젊은 시절에 세가지의 이로운 벗, 즉 정직한 사람, 믿음직한 사람, 견문이 넓은 사람을

친구로 얻어 인생의 초석을 다지는 것도 공부 못지 않는

중요한 소명이다.

< 예 원 성 >

반응형

★우생마사(牛生馬死)★

아주 커다란 저수지에
말과 소를 동시에 던져 넣으면
둘 다 헤엄쳐서 육지로 나옵니다.
말의 헤엄 속도가
훨씬 빨라 거의 소의
두 배의 속도로 땅을 밟는데
네발 달린 짐승이
무슨 헤엄을 그렇게
잘 치는지 보고 있으면 신기하죠.
그런데, 장마기에
큰물이 지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갑자기 불어난 물에
소와 말을 동시에 던져 보면,
소는 살아서 나오는데,
말은 익사를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말은 헤엄은 잘 치지만
강한 물살이 떠미니깐
그 물살을 이겨 내려고
물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려 합니다.
1미터 전진 하다가 물살에 밀려서
다시 1미터 후퇴를 반복합니다.
한 20분정도 헤엄치면
제 자리에서 맴돌다가 지쳐서
물을 마시고 익사해 버립니다.
그런데 소는 절대로 물살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냥 물살을 등에 지고
같이 떠내려갑니다.
저러다 죽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10미터 떠내려가는 와중에
1미터 강가로 그렇게 한
2~3 킬로 내려가다
어느새 강가의 얕은
모래밭에 발이 닿고 나서야
엄금엉금 걸어 나오죠.
신기한 일입니다.
헤엄을 두 배나 잘 치는 말은
물살 거슬러 올라가다
힘이 빠져 익사 하고
헤엄이 둔한 소는 물살에 편승해서
조금씩 강가로 나와 목숨을 건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 유명한 "우생마사" 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일이
아무리 애써도 꼬이기만 하죠.
어렵고 힘든 상황일 때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소와 같은 지혜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 좋은글 中에서 -

 

반응형

'인생2막 근육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혈압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식품  (0) 2024.02.23
진정한 우정  (0) 2022.11.27
70세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  (0) 2022.03.06
부산의 날다람쥐 할아버지  (0) 2022.02.12
배우 배종옥  (0) 2021.08.08

휴일 날 아침 <동아일보>에서

72세 여행작가의 이야기를 읽어면서

다시금 삶에 대한 전의를 다져 봅니다.

 

나이 들수록 뭔가 새로운 일을 벌여야 해요. 저로서는 몇 년 새 책을 3권 냈으니 나름대로 새로운 일을 벌인 셈인데,

소소하지만 돈도 벌고 활력도 얻을 수 있었어요. 노년은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를 가르는 나이가 아니라

내 마음, 내 의지가 관건인 시기인 거죠. 적어도 재미있게 시간은 보낼 수 있어야죠.”

―‘시간을 보낸다’고 표현하시네요. 나이 들면 시간이 버겁고 때워야 할 대상처럼 되는 걸까요.

“현실은 현실이죠.

전 아직 바쁘게 지내지만, 뭘 할지 몰라 하는 제 나이대 분들도 많아요.

6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80대 들어서면서 부쩍 ‘사는 게 지루하다’고 하시더군요.

늘어나는 수명을 어쩔 수 없다면 기왕이면 보람되고 생산적인 일을 하며

그 시간들을 덜 지루하게, 스스로가 충만하게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흔히 노후를 말하면 사람들이 경제만 생각하는데 사실 나이 먹으면 돈 쓸 일이 많지 않아요.

병원비도 한국의 의료제도가 생각보다 잘돼 있고요. 저는 경제보다 시간이 문제인 것 같아요.

고독, 무료함, 이런 데서 우울증 불면증도 생기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살아보니 60∼75세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 했는데….

“동감합니다.

그 전에는 결혼이건 아이건 누군가를 책임져줘야 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 자기만의 시간,

오롯이 나를 책임져야 할 시간이 온 거죠. 자기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아직 60대가 안 되신 분들은 지금 워밍업이라고 생각하시고 너무 힘 빼지는 마세요.

무슨 일이건 연습처럼 가볍고 즐겁게 하세요.”

―60세쯤 은퇴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얘기가 위로가 될까요.

“세상도, 생각도 자꾸 바뀌는 것 같아요.

이제는 100세까지 산다는 것을 전제로 인생설계를 해야 하지요.

그러니 60대 이후로도 무슨 일이건 하셔야 할 겁니다. 전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쉬어가면서

일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너무 빡빡하게 열심히 살지 말라고.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데 너무 지치면 안 되는 거죠.

전 30대 후반인 제 딸에게도 쉬면서 하라고 얘기해요.

이제 자식들에게 ‘열심히, 부지런히‘를 강요하면 안 됩니다.”

반응형

'인생2막 근육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한 우정  (0) 2022.11.27
우생마사(牛生馬死)  (0) 2022.04.13
부산의 날다람쥐 할아버지  (0) 2022.02.12
배우 배종옥  (0) 2021.08.08
게으른자의 변명  (0) 2021.06.13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 가면서

본받아야 겠다는 훌륭한 삶을 느꼈기에

기록하고 기억하려 합니다.

부산 감천마을에는 배달의 신,
일명 '날다람쥐' 오광봉 할아버지가 살고 계십니다.
현재 88세인 오광봉 할아버지는 83세의 연세까지
새벽 신문 배달을 36년을 넘게 하셨는데요.

젊은이들도 숨 가쁘게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린다고 해서
동네 주민들은 할아버지에게 '날다람쥐'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가내수공업을 하다가
그만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오른손은
엄지손가락만 남아있습니다.

새벽 신문 배달... 힘들고 고되지 않을까요?
어느 날 한 방송 프로그램 리포터가
할아버지께 질문했습니다.

"할아버지, 이 연세에 일하시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하십니다.

"힘들면 인생을 살지 말아야지!
나는 이만큼이라도 건강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그리고 일해서 얻은 수입의 3분의 1 정도는
꼭 책을 사는데, 독서는 인생을 즐겁게 해요.
육체는 가난하더라도 정신은 가난하면
절대 안 돼!"

반응형

'인생2막 근육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생마사(牛生馬死)  (0) 2022.04.13
70세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  (0) 2022.03.06
배우 배종옥  (0) 2021.08.08
게으른자의 변명  (0) 2021.06.13
현자(賢者) 의 가르침  (0) 2021.03.29

배우 배종옥은 벌써 18년째 매일 아침 108배를 하며 "버틸 수 있는 힘" 기르는 훈련을 한다
배종옥은 벌써 18년째 매일 아침 108배를 하며 "버틸 수 있는 힘" 기르는 훈련을 한다
1985년 데뷔한 배종옥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유선애 <마리끌레르 코리아> 피처 디렉터한겨레

배우 배종옥. “나 자신을 통해 배우가 되기 위한 실험을 한 것 같아요. 그때그때 맞는 과제들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요.”
배우 배종옥은 한 장면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사력을 다해 연기해보려는 사람이다. 1985년에 데뷔해 지금껏 한 해도 자리를 비우지 않으며 60여편의 드라마와 20여편의 영화, 9편의 연극에 몸담아온 성실한 이력서가 이를 말해준다. 매 순간 진심이기 어려운 삶 속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위해 밀도 높은 시간을 살고자 한 그는 자신의 삶을 두고 ‘배우로서 자신을 실험하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 나이에 뭘 또 성장해?’ 할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남들 보기에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보기에 배우로서 배우고 발전하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요.” 영화와 드라마로 익숙한 그이지만 배우 배종옥은 여전히 연극 무대를 지키고 있다. 많은 배우들이 ‘연극도 하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그처럼 두 장르의 균형을 맞추고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지난달 말,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8월7일부터 한달가량 선보이는 연극 <분장실> 첫 공연을 앞두고 연습 중에 있던 배우 배종옥을 청담동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의심, 갈증, 고민이 나를 만들었죠
―연기에 능숙한 배우들조차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무대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등의 악몽을 자주 꾼다고 하던데요, 고생스러운 일을 최근 매년 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주변에서 편히 지내라고 타박도 할 것 같은데요.
“대단하다고들 해요. 진짜 대단해서가 아니고요, ‘바쁜데 뭘 굳이 연극까지 해. 충분해’라는 의미를 담은 말들을 하죠. 무대 작업의 어려움이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 현장이 주는 힘듦도 있거든요. 무대가 특별히 더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연극 작업 자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1999년 장진 감독의 연극 <아름다운 사인>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습니다. 1985년 드라마로 데뷔한 뒤 14년이 지나 첫 연극을 한 셈인데요. 연극에서 출발해 영상 매체로 자리를 옮기는 배우는 많지만, 배종옥 배우처럼 반대의 경우는 드물어요.
“연극 무대에 서고 싶어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지만 막상 대학 다닐 때는 늘 기가 죽어 있었어요. 기라성 같은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저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을 매일 했죠. 배우를 포기하려 하던 차에 우연히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어요. 그렇게 매체를 통해 먼저 연기를 했죠. 이후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고 캐릭터도 얻었지만 늘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스스로 반복적으로 연기를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에 무대에 오르면 그 답답함이 많이 해소가 되더라고요. 막연하게 무대를 동경하던 20대 초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대를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무대와 무슨 인연이 있긴 한가 봐요.”
―연영과 3학년 때 연기를 그만둘 생각으로 무대 장치로 전공을 바꿨죠? 재능에 대한 의심으로 늘 기가 죽어 있던, 의기소침한 모습이 상상이 안 되는데요. (웃음)
“그렇죠? (웃음)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내 연기는 늘 부끄럽고 부족했어요. 그 안에서 ‘지금 여기 나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20, 30대를 보냈죠.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뭐가 부족하지?’를 끊임없이 생각했어요. 돌아보면 그때의 고민이 저를 동료 배우들과는 다르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저를 주눅 들게 하던 친구들은 지금 아무도 연기를 안 해요. 다 사라지고 없어요.”

김금희 작가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읽고 세 명의 배우가 독백 대사를 보내왔습니다. 똑같은 소설을 읽었지만 세 배우의 독백은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의 독백은 어떨까요?

배우 조민경 | 배우 민소연 | 배우 윤혜리

―재능에 대한 의심은 언제 거둘 수 있었나요?
“30대 중반부터는 ‘그래, 그냥 열심히 하자’ 했죠.”
―꽤 오랜 시간 의심을 놓지 못했네요. 헌데 ‘연기를 잘한다’는 건 주관적인 판단이잖아요. 일찍이 20대 후반에 대종상 여우조연상(영화 <젊은 날의 초상>)과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영화 <걸어서 하늘까지>) 등을 수상하며 두루 좋은 평을 받았음에도 자기 의심을 거두질 못했던 것이죠?
“모든 것에는 주관적인 판단이 들기 마련이고, 그 주관적인 판단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질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아니야, 너는 잘해, 재능이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한들 스스로 납득이 안 된다면 타인의 말은 큰 의미 없는 거죠. 당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아직 부족해.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단계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자아가 강해서일까, 저는 제 판단이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그만큼 오래 고민했고,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붙이기도 했어요. 젊었을 때는 굉장히 까칠했죠. 대사 하나 틀리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배우로서 현장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요. 자학도 심했어요. ‘네가 그렇지, 잘하는 게 뭐가 있니?’ 하며 스스로를 할퀴기도 하고.”
―이쯤 되면 자학과 강박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을 것 같은데요.
“때때로 ‘너무 헐렁해진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풀어지기도 해요. 예전에는 고민이 들지 않는 캐릭터를 만날 때 두려웠거든요. ‘대충 하는 거 아니야? 이래도 되겠어?’ 하고 스스로를 추궁했고요. 지금은 헐렁함이 주는 여유를 배우고 있어요. 나이가 들고, 선배가 될수록 관용과 너그러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렇지 못한 어른들을 보면서 저의 어떤 부분은 수정하기도 해요.”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남들 보기에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보기에 배우로서 배우고 발전하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요.”
어떤 선택이라도 책임지는 게 어른 같아요
―앞의 대화에서 우연한 기회로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요, 우연치 않던 그날로부터 36년이 흘렀습니다. 배종옥 배우의 사례만 봐도 ‘운 좋게 얻은, 우연한 좋은 기회’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와 운이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드라마틱하게 ‘기회!’ 하고 올 것만 같잖아요. 근데 기회는 그런 얼굴로 오지 않아요. 때로는 그게 기회인지도 모르게 올걸요. 그걸 기회로 만드는 건 자기 몫이죠. 제가 특채로 데뷔를 했다고 해서 지금까지 배우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데뷔 후 3년간 엄청나게 고생을 했는데 그때 연기의 끈을 놓았다면 저는 배우가 안 됐겠죠. 그랬다면 그건 저에게 기회가 아닌 거예요.”
―전혀 기회라고 생각 안 했는데 돌아보니 기회였던 것들도 있었지요?
“배우니까 특히 작품을 하면서 그걸 많이 경험해요. 드라마 <거짓말>(배종옥의 배우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노희경 작가를 처음 만나게 한 작품이다) 제작 당시 저는 캐스팅 순위에 없었어요. 제가 먼저 제작진에게 연락해 들러붙어서 참여하게 된 거예요. 저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던 장르인 멜로를 극복하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어요. 돌아보면 그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큰 전환점을 맞았어요. 기회죠. 만약에 ‘그래, 내가 별로야? 그럼 나도 안 해도 돼. 다음 작품 하지 뭐’ 하고 포기했다면 배우로서 제 인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 같아요. 기회는 스스로 오기도 하지만 잡기도 해야 하는 거죠.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지수 역할 역시 물망에 올랐던 모든 배우가 안 하겠다고 해서 저에게 온 거였어요.”
―그해 방송 3사를 통틀어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했던 작품이죠.
“당시에 정경호 배우와 영화 <허브>라는 작품을 찍었어요. 정을영 감독님(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감독이자 배우 정경호의 아버지)이 캐스팅 난항을 겪던 중에 아들의 영화를 보러 왔다가 저를 발견한 거예요. ‘아, 배종옥이 있었지!’ 하고 연락을 한 거죠. 그때 ‘다른 배우들이 다 안 하겠다고 하는 걸 내가 왜 해?’ 했다면 그 역시 내 기회가 아니었겠죠. 그간 해보지 못했던 순종적인 역할에 호기심을 느꼈고, 도전하고 싶어서 제가 선택을 한 거예요. 기회는 그렇게 오는 거죠. 가만히 앉아 있는데 기회는 오지 않아요.”
―반대로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아니었던 일도 있나요?
“있죠. 근데 생각나지 않아요.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고요. 저도 다 성공한 건 아니에요. 실패한 작품도 있죠. 어떻게 매번 선택에 성공해요? 그럴 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지만 아닌 것도 있는 거지’ 하고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잘해요. 일상에서도 틀린 선택을 하더라도 책임지는 게 어른 같아요. 무슨 일이건 마무리를 잘 짓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참여한 작품이 비난받을 때 혹은 작품 안에서 배우로서 질타받을 때도 묵묵히 받아내려 해요.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게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에요. 오래 일하다 보니까 이게 옳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미루고 회피한들 제가 거기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로요.”
―오랜 시간 다양한 역할을 통해 주체적인 여성상을 제시해왔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전문직 역할을 주로 맡으며 ‘자기 말을 선명히 하는 사람’으로 등장했지요. 최근까지도 드라마 <우아한 가(家)>를 통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고요. 한 인간이 주체성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나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나라는 것은 언제 자각된다고 봅니까.
“이어지는 대답인데요,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이죠. ‘나는 그때 안 하고 싶었는데, 너 때문에 했잖아. 그러니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하는 게 제일 비겁한 거 같아요. 어떤 상황 안에서 내가 행동했다는 건 나의 선택이거든요. 그걸 정확히 인지하고 책임지는 것이 주체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봐요.”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의 마음공부가 삶의 큰 변화를 만들어줬다고 했습니다. 요즘도 매일 108배를 하고 있나요?
“그럼요. 매일 아침마다 하죠. 벌써 18년 가까이 됐네요. 무릎에 굳은살이 생겼어요. 촬영 있는 날도, 또 너무 하기 싫은 날도 그냥 해요. 운동처럼. 법륜 스님이 명상과 108배를 매일 하라고 하시거든요. 기도라는 게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기원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무르며 어떤 상황이든 잘 받아들이고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라고 하시죠.”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무른다는 말이 새삼 와닿습니다. 철학자 몽테뉴도 ‘나는 춤을 출 때는 춤만 추고, 잠을 잘 때는 잠만 잔다’는 말을 했죠.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을 제대로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숙제입니다. 온전히 머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도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고요.
“하루에도 틈틈이 자신을 인지해야 해요. 무슨 일을 하다가도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아니야, 나 지금 이거 하고 있는데’ 하고 깨어 있으려고 하는 것이 지금 여기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 같아요. 밥을 먹을 때도 의식적으로 밥만 먹으려고 해보고요. 최종적으로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 아닐까요? 흔히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놓치지 말라고 하잖아요.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저 역시 젊을 때는 내가 계획한 대로 다 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계획했고, 목표를 향해 달렸는데, 돌아보면 작은 일에 있어 내 계획대로 된 게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크게 보면 내가 품었던 목표점을 향해 가고 있어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경로만 다를 뿐 종착지는 같은 거죠.”

배우이지만 배우가 좋습니다
―무대를 향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했던 연기의 경로는 어떻게 변화해온 것 같습니까?
“배우로서 명성과 명예를 얻기 위해 노력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 자신을 통해 배우가 되기 위한 실험을 한 것 같아요. 그때그때 맞는 과제들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요. 배우는 자신에게 익숙한 캐릭터만 고수하기가 쉽고, 그런 식으로 실패의 확률을 낮추기도 하는데요, 저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한 크고 작은 도전들을 해왔어요. 그 경로 속에서 배우로서 커리어를 쌓고 나이 들어왔고요.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 있었던 거죠. 누군가는 ‘그 나이에 뭘 또 성장해?’ 할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남들 보기에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보기에 배우로서 배우고 발전하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요.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저는 이 여정이 재미있었어요. 어떤 의무감도 아니었고, 지금 이걸 돌파해서 다음 단계로 도달해야지 같은 목적 지향도 아니었어요.”
―스스로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자극이 되고 지침이 되었던 여성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간 나문희 배우, 윤여정 배우에 대한 큰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윤여정 배우는 배종옥 배우와는 떼놓을 수 없는 사람인 노희경 작가를 소개해준 분이기도 하죠.
“많은 도움을 받았죠. 두분 선생님들과는 작업을 함께한 덕분에 그분들의 존경스러운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어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윤 선생님은 솔직하시죠. 연세가 있으시지만 후배들을 친구처럼 대해주면서도 많은 가르침을 주세요. 언젠가 연기가 도저히 안돼서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운 적이 있어요. 왜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도무지 표현이 안 되는 때가 있거든요. 제가 막 우니까 담배를 한대 피우시면서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그래, 고통스럽지” 하시는데, 그 한마디가 왜 그렇게 위로가 되던지. 지금까지도 그날 기억이 나요. 무엇보다 작품을 선택할 때 두분 모두 쉽지 않은 결정을 하시잖아요. 그런 과감함이 후배들에게 한 뼘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게 하는, 지평을 넓힌다는 점에서도 존경스럽죠. 제가 늘 배우게 되는 분들이에요.”
―동시에 작품을 통해 배우기도 하지요?
“그럼요. 대학교 4학년 때 메릴 스트립의 영화 <소피의 선택>을 보고 가슴이 뛰어서 3, 4일은 잠을 못 잤어요. 오랜 시간 롤모델이었고, 지금 봐도 너무 잘해요.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게 인물을 표현해낼 수 있을까. 또 그가 연기했던 <워싱턴 포스트> 창립자의 딸 캐서린 그레이엄의 생애를 담은 영화 <더 포스트>가 있는데 영화 원작인 자서전도 훌륭해요. 어려운 상황에서 용기를 발휘하고 그를 통해 무언가를 이뤄낸 여자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아가 자기 마음의 이야기를 잘 들여다보며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름답죠. 그렇게 살아가는데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가요?
“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미 배우잖아요.
“배우 맞는데요. (웃음) 더 배우가 되고 싶고, 더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점점 주변에서 저를 두고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까요?’ 하고 묻기도 하는데요, 배우라고 부르라고 해요. 그래서 다들 저를 ‘배 배우’라고 불러요. (웃음) 이미 배우이지만 배우가 좋고, 배우이고 싶고, 배우가 되고 싶어요.”

유선애 <마리끌레르 코리아> 피처 디렉터
유선애. 1990년대에 태어난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묶은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2021)을 펴냈다. 매 순간 새롭게 배우고 깨치는 배우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맡은 배역을 깊이 탐구하고 탐험해온 중견 여성 배우들에게 ‘배우는 삶’에 대해 묻고, 듣고자 한다.


반응형

'인생2막 근육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70세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  (0) 2022.03.06
부산의 날다람쥐 할아버지  (0) 2022.02.12
게으른자의 변명  (0) 2021.06.13
현자(賢者) 의 가르침  (0) 2021.03.29
득도다조(得道多助)  (0) 2021.03.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