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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하고 베풀며 살자니르바나의 언덕에서 2020. 2. 14. 11:13
참회와 감사와 나눔을 실천할수 있는
인간몸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는
이생에서의 우리는
매일 조석으로 참회하고,
감사하고,
또,
베풀어 주면서 살아가자.
다음생에는
현재보다 더 나은 환경속에서
안락한 몸 받기를 발원하면서 말이다.
아랫글은 공양칸에 걸려있는
오관게(五觀偈)를 우리말로 해설한
공양게이다.
한번 찬찬히 읽어 보자.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체들의 목숨을
아무 거리낌 없이 빼앗으며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미안하다거나
죄스럽다는 생각조차 않는다.
아니,
당연시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며
제법 고상한척 한다.
인간의 먹을 거리는
모두 다른 생명체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섭리이다.
석가는 말씀 하셨다.
살생을 하지 말라고...
허나,
살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석가는 살생하지 말라 하는가?...
생명 유지를 위한 살생,
그것은 공양(供養)이어야 한다.
하나뿐인 생명을 바치는 입장에서는
고귀한 자기 희생이며
받는 입장에서는 눈물겨운 수용인 것이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을 주고 받는 일인 만큼
고귀하고 성스러운 행위여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한낱,
요란하게 즐기고 행복해 하기 위한
행위가 될수 없다.
내것이라면
하찮은 물건 하나라도 아까워 하면서
어떻게 유일하기로 치면
사람과 조금의 차이도 있을수 없는 생명을
함부로 빼앗을수 있겠는가?.
우리는 매일,
그토록 고귀한 헌공에 의해 살아 간다.
어찌 감사하다 하지 않으랴?...
그런 의미에서
식전(食前)에 공양게를 읆조리며
합장하는 기도는
그 감사함의 표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게 바쳐진 모든 생명 공양을
결코 헛되이 받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되어야 한다.
나를 살리기 위한 모든 희생과 함께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리라는
이타(利他)의 표시여야 한다.
그 고귀한 희생에 의해 살아 가면서
내 어찌 허튼 짓을 하고 악행을 하랴?. ..
내가 허튼 짓 하고 악행을 한다면
내게 바쳐진 그 공양은
다 어쩌란 말인가?....
너무나 억울한
희생이 되고 말 것이 아닌가?.
선량한 언행으로
나를 위해 희생한 그들에게
답하지 못한다면
그 숱한 빚을 다 어찌 감당하랴?.
생명을 바친 그들의 억울함을
다 무엇으로 어루만지랴?...
내 물건 아끼는 만큼이라도
다른 생명체를 아껴 준다면,
몸에 좋다고 닥치는 대로 잡아 먹고
즐겁다고 죽이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이다.
힘겨운 우리네 삶에서
하루이틀 주어지는 귀한 휴식의 시간들
흥청망청 마구 먹고 마시고 버리는
그런 시간이 아니라
모든것에 감사하는
그렇게 마음 다스리는
힐링의 시간들이었음 좋겠다.'니르바나의 언덕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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