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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듣는 수행 법문니르바나의 언덕에서 2020. 4. 21. 06:59
내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내가 되받지 않는다면
누가 받을 것인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 짐을 내가 지지 않겠다면
누가 대신 져 줄 것인가?...
대신 밥 먹어 주고
대신 잠자줄수 없듯이,
대신 똥누고 대신 아파줄수 없듯이
내 짐을 어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은 철칙이다.
한 치의 에누리가 없는 법칙이다.
누가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아무리 관세음 보살을 찾고,
아무리 다라니를 외어도
자작자수(自作自受)의 법칙엔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대신 짐을 덜어 주고 싶어도,
더 보태 주고 싶어도
야속하지만 예외는 인정되지 않는다.
고로,
지금 내게 닥치는 일체의 경계들,
밖에서 다가오고
안에서 솟아나는 일체의 일들,
사건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그 언제인가
내가 지었던 모든 행위들의 결과이다.
인과의 씨앗은 썩지 않는다.
고로,
피하고 싶어도 피할 길이 없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짓고 받는 그것을
팔자 또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가운 소식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삶을 고(苦)라고 단언하셨지만,
아울러,
그 고의 멸도(滅道)를 가르쳐 주셨다.
해탈의 길,
열반의 길도 몸소 보여 주셨다.
부처님께서
성취하고 보여 주신 길은
완전한 자유,
영원한 즐거움 그것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다가오는 경계가 마음에 들면
그것이 오래 계속되기를 바라고,
그것이 고통이라면
하루 속히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될 것은
그 경계의 참된 원인을 살펴서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나라는 존재는 쉴 새 없이
고락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
그러므로
고의 원인을 밝혀내지 않는 한
하나가 지나가면
또다른 고가 닥쳐 오는 것을
면할 길이 없게 된다.
인생이 고해라지만
동시에 나를 제도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생은
마냥 고만은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고다,
업보다,
운명이다 하기 이전에
일체 경계를 놓고 관하는
수행에 전념할 일이다
승려는 항상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합니다.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이유는 마음이 삿된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마음이 성적인 욕망으로 달려가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마음이 그쪽으로 발달한 것은 당신이 그쪽으로 업을 발달시켰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삿된 사유입니다.
당신은 바른 사유를 위반하셨습니다.
마음이 삿된 사유로 달려가지 못하도록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바른 마음챙김입니다.
당신은 바른 마음챙김을 위반하셨습니다.
어떻게든 마음이 삿된 사유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저항력을 기르는 것이 바른 정진입니다.
당신은 바른 정진을 위반하셨습니다.
알아차리고 정진하여도 삿된 사유가 계속되면 출가자의 계율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언어, 바른 행위, 바른 생계입니다.
당신은 이 세 가지를 위반하셨습니다.
수행이 무르익으면 마음을 삿된 쪽으로 기울여도 저절로 가운데로 돌아옵니다.
고요와 평온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른 삼매입니다.
바른 삼매와 함께 그런 욕망들이 괴로운 것이고 일시적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당신에게 바른 삼매와 바른 견해가 생기지 않은 것은 팔정도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팔정도를 실천하지 않는 자는 출가자가 아닙니다.
종단이 당신에게서 승려 자격을 박탈한 것은 당연한 과보입니다.
세속으로 돌아가더라도 당신이 자신을 여전히 붓다의 제자라고 생각한다면 부디 팔정도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니르바나의 언덕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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