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이제야 수행 좀 하겠구나>
20대 시절, 희양산 봉암사에서 참선 하던 때입니다.
어느 날인가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어느 젊은 스님이 출가하여
몇 년 동안 선방을 다니며 참선 수행을 하였습니다.
젊은 스님이 우연히 노스님을 만나 뵙게 됩니다.
노스님과 법담을 나누며 가르침을 청하던 중에
젊은 스님이 노스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스님, 제가 처음에 수행을 시작할 때
깨달음을 금방 얻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새 들어서
‘아, 나의 그릇이 참 작구나,
내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젊은 스님의 솔직한 자기 고백을 들은
노스님이 방긋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셨다는군요.
“이제야 자네가 수행 좀 하겠구먼.”
이 이야기를 당사자인 젊은 스님에게
직접 듣고서는 참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이야기가 가끔씩 기억납니다.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반대로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1999년 코넬 대학교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과 그의 제자 저스틴 크루거는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진행합니다.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한 뒤
시험 점수를 알려 주고 나서
자신의 점수가 몇 등일지 예상해보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결과가 도출됩니다.
점수가 낮은 학생일수록 자기 등수를 높게 예상하고,
점수가 높은 학생일수록 자기 등수를 낮게 예상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반복된 실험을 통해서
‘무능한 사람일수록 의외로 자신감이 높다는 것’
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제가 직접 겪었던 일입니다.
살다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어떤 분들은
자기가 굉장히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잘되고 있고
앞으로 크게 될 거라고 과장하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워낙 사회 경험이 없고 머리가 우둔한지라
그런 사람들의 말만 믿고 진짜로 믿기도 했습니다.
훨씬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알맹이 없는 허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차리게 됩니다.
큰소리로 자신 있게 자신이 아주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신중하게 처신해야합니다.
실력이 없는 사람이 자신감만 가득할 때
때로 그 자신감은 자신을 망치는
교만과 아집, 고집으로 발현되기도 합니다.
어떤 청년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자기 계발 이론’으로 무장된 젊은이입니다.
항상 스스로에게 외칩니다.
“난 잘 된다. 난 성공한다. 난 완벽하다.”
그런데 그 청년의 현재는
전혀 나아지질 않습니다.
스스로 믿는 자신감만큼,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에게는 약이 필요합니다.
그에게 필요한 처방문은,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와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중국 대륙에서
항우와 유방이 격돌했을 때
모든 면에서 항우가 유방보다 뛰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유방의 승리로 역사를 장식합니다.
시대의 수많은 평론가들이
항우와 유방을 노래하면서
항우가 유방에게 패한 결정적인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그것은
‘지나친 자신감’이었다고 합니다.
항우는 실제로 아주 출중한 인물이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나친 자신감이 교만이 되어
스스로를 망친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보기 참 어렵습니다.
자신을 바로 보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항상 속고 착각하는 것이
우리 의식의 불안정한 모습입니다.
자신을 바르게 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스스로를 낮게 비운다면 어떨까요?
‘자신의 부족함을 이제야 알겠다’는 말에
‘이제야 수행 좀 하겠구나’ 라고 껄껄 웃었던
노스님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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