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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붓다께서 말씀하신 알아차림의 수준
    니르바나의 언덕에서 2020. 5. 30. 07:15

    2020 부처님 오신날~

    붓다께서 요구하는 알아차림의 수준

    어떤 분이 ‘부처님 말씀처럼 수행하자(如說修行)’는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부처님께서 요구하는 알아차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아들의 살 경(S12.63)
    “비구들이여, 윤회의 괴로움에서 허덕이는 중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네 가지 음식이 있다. 그것은 음식, 감각접촉, 의도, 의식이다.

    (음식)
    비구들이여, 부부가 외아들과 함께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사막을 건너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사막 한가운데서 식량이 다 떨어져 버렸다. 부부는 생각했다. ‘여기서 다 죽을 수 없으니 아들을 죽여서 그 살을 육포로 만들어 가면서 먹으면 사막을 다 건너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아들을 죽여 육포로 만들어 먹으면서 사막을 건널 것이다. 그들은 아들의 살을 먹으면서 ‘아들아, 너는 어디 있느냐?’라고 비통한 마음으로 고기를 먹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부부는 식도락을 위해, 맛에 탐착하기 위해, 건강한 육체를 위해 음식을 먹겠는가? 아니면 비통한 심정으로 아들의 살을 먹겠는가? 이처럼 음식을 먹을 때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이 일어나는 것에 섬세하게 깨어있고 올바르게 알아차려야 한다.”
    당신은 음식을 먹을 때 아들의 살을 먹는 것처럼 맛에 대한 탐착이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알아차리고 먹습니까? 젓가락이 제일 먼저 좋아하는 반찬으로 향할 때 거기에는 벌써 탐욕이 일어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까? 젓가락이 움직일 때 음식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섬세하게 알아차리면서 먹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식도락과 건강미 넘치는 육체를 위해 좋은 식당을 찾아다니며 좋은 음식을 찾습니까?

    (감각접촉)
    “비구들이여, 가죽이 통째로 벗겨진 소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파리, 모기, 진드기와 같은 온갖 곤충과 벌레들이 달라붙어 피를 빨고 살을 뜯어 먹는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은 이와 같다. 감각접촉이 일어날 때, 좋아하는 느낌, 싫어하는 느낌, 무덤덤한 느낌이 일어난다. 그 느낌에 섬세하게 깨어있고 올바르게 알아차려야 한다.”
    당신은 눈으로 형상을 접촉하고, 귀로 소리를 접촉하고, 코로 냄새를 접촉하고, 혀로 맛을 접촉하고, 몸으로 감촉을 접촉할 때, 마치 가죽이 벗겨진 소가 곤충과 벌레가 피를 빨고 살을 뜯어 먹는 것처럼 생생하게 깨어있습니까? 감각접촉에 알아차림을 유지하여 일어나는 느낌에 끌려가지 않고 휩쓸리지 않으려고 알아차림을 유지합니까? 아니면 오히려 감각접촉을 즐기기 위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티브이를 켜고, 음악을 듣고 있습니까?

    (의도)
    “비구들이여, 한 길이 넘는 숯불 구덩이에 숯불이 연기도 없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고 하자. 당신은 자살할 의도가 전혀 없다. 오히려 생존에 대한 처절한 욕구가 있다. 그런데 힘센 두 남자가 당신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끌고 가서 숯불 구덩이에 던져버리려고 한다. 이것은 당신의 의도와 거리가 멀고, 소망과 거리가 멀고, 염원과 거리가 멀다. 이처럼 의도가 일어날 때 갈애가 함께 일어나는 것에 섬세하게 깨어있고 올바르게 알아차려야 한다.”
    당신은 의도가 일어날 때, 거기에 갈애가 함께한다는 것을 알아차립니까? 갈애와 함께한 의도가 생각을 일으키고, 생각이 번뇌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차립니까. 숯불 구덩이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그렇게 갈애가 함께한 의도가 일어날 때, 그 의도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섬세하게 깨어있습니까? 생각에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섬세하게 알아차림을 유지합니까? 아니면 오히려 의도로부터 시작된 생각의 홍수를 즐기고 있습니까?

    (의식)
    “비구들이여, 도둑을 잡아서 왕에게 끌고 가서 처벌해달라고 할 때, 왕이 삼백 자루의 창으로 찌르라고 판결했다고 하자. 삼백 자루의 창에 찔리면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처럼 의식으로 인해 정신-물질이 일어나는 것을 섬세하게 깨어있고 올바르게 알아차려야 한다.”
    의식이 일어나면 몸과 마음이 따라 일어납니다. 그 몸과 마음에 대해 ‘이것이 나의 몸이다. 이것이 나의 마음이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 몸과 마음으로 ‘이것이 나다.’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에고로 울타리를 치고, 나와 나 아님을 구분하여 나 밖의 것은 쳐내고 경계합니다. 이렇게 정신-물질이 일어나는 것에 당신은 깨어있습니까? 알아차림을 유지합니까?
    이것이 붓다께서 요구하는 알아차림의 수준입니다.
    “아들의 살을 먹는 것처럼 음식을 먹어라. 벗겨진 살에 벌레가 살을 파먹는 것처럼 감각접촉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에 깨어있어라. 숯불 구덩이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처럼 의도가 일어날 때 갈애가 함께 일어나는 것을 섬세하게 알아차려라. 창에 찔릴 때의 고통처럼 의식이 일어날 때 ‘자아’가 함께 일어나는 것을 섬세하게 알아차려라.”
    이건 매우 비인륜적이고 과격한 비유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고도의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경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붓다께서는 수행이란 섬세한 깨어있음, 고도의 알아차림, 현상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볼 수 있는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고 보신 것입니다. 그냥 계를 지키고 착한 행위를 하고 봉사하는 것이 불교의 수행이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붓다께서 출가 비구에게 법문하신 것입니다. 재가자에게는 이런 고난도의 관찰을 요구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붓다의 말씀처럼 수행하고 싶다면 거기서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당신은 출가자에 버금가는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 이처럼 고난도의 알아차림을 요구하냐고요? 이 네 가지, 즉 음식, 감각접촉, 의도, 의식이 중생을 유지하는 자양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 자양분이 윤회의 괴로움에서 허덕이게 하는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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