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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들의 돈에 대한 생각(심리)
    인생2막 근육키우기 2025. 1. 18. 10:54

    [돈의 심리] 

    아는 어른이 여든 살 넘어 자산과 관련해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현금 4억 원을 한꺼번에 받기, 150만 원 정도의 돈을 매달 받기. 가족 간 상속 재산을 분배하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나는 그분이 현금 4억 원을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평생 4억 원이라는 큰돈을 만져본 적이 없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한 돈을 보유할 기회가 생겼으니, 당연히 현금 4억 원을 선택하리라 짐작했다.
    나이가 들면 돈을 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자동으로 부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GettyImages]
    한꺼번에 4억 vs 매달 150만 원?
    그러나 선택은 의외였다. 억 단위 큰돈은 필요 없다고 했다. “지금 나이에 그 돈을 가져서 뭘 할 건가. 집을 살 것도 아니고, 차를 살 것도 아니고, 사업을 할 것도 아닌데. 그 돈을 가져봤자 통장에 넣고 죽을 때까지 두기밖에 더 하겠나.” 몇억이라는 돈을 보유하는 건 그분 선택지에 아예 없었다. 그렇다고 매달 150만 원이 들어오는 걸 원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분은 이미 공무원 연금으로 매달 200만 원씩을 받고 있어 생활에 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니 매달 150만 원이 더 들어온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겠나.

    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자주 사 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 늙어서는 맛집 찾아다니는 것도 일이다. 젊을 때는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지만, 여든 정도 나이에는 주로 집밥을 먹고, 밖에서 먹더라도 집 근처 평소 다니던 식당만 간다. 색다르고 특별한 음식? 맛은 있을지 몰라도 안 먹던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안 돼 고생할 확률만 높아지는 나이다. 여행 가서 돈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이런 생각도 보통은 70대까지만이다. 80대가 되면 어디를 가려고 할 때 몸이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큰 결심을 하고 어쩌다 갈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정말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다.
    매달 150만 원이 더 들어오면 그 돈을 써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돈을 쓰려면 지금 생활에 뭔가 변화가 생긴다. 여든 넘은 나이에 그런 변화는 필요 없다. 더는 변화가 싫은, 보수적이고 고루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80대의 변화는 몸에 큰 무리를 줄 수 있다. 하루 몇백m만 더 걸어도 다리에 무리가 간다. 평소보다 조금만 더 먹어도 소화를 걱정해야 한다. 그대로 살기를 원한다. 그러니 몇억 원이든, 매달 더 들어오는 돈이든 필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상속 재산 정리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돈을 분배해야 했고, 그분은 돈이 훗날 어렵게 사는 자식이나 손자에게 가기를 원했다.

    이런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알게 된다. 나이가 들면 정말 돈을 안 쓰는구나. 돈 많은 노인이 돈을 쓰지 않고 그냥 갖고만 있는 이유가 그래서구나.
    노인들이 돈을 쓰지 않는 것은 최근 선진국의 주요 경제 문제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했을 때 이들의 소비가 늘면서 경제가 활황을 이룰 것이라고 봤다. 베이비붐 세대는 풍부한 노후자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느라 돈 쓸 시간이 없었지만 은퇴하면 시간이 많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으면 소비를 많이 하지 않겠나. 그래서 노인 대상 실버산업이 각광받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달랐다. 은퇴한 노인들은 돈을 잘 쓰지 않았다. 계속 저축하고 묵히기만 했다. 이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노인 세대가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진 선진국들의 공통 현상이다. 일본에서도 큰 재산을 가진 노인들이 돈을 쓰지 않고 부자로 죽는 것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 순자산 40% 노인이 보유
    돈은 계속 돌아야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노인들 수중에 들어간 돈이 유통되지 않고 쌓여만 있으면 좋을 게 없다. 일본 정부는 노인들 돈이 시중에 풀릴 수 있도록 여러 정책 방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일본 노인들은 돈을 쓰지 않은 채 부자인 상태로 죽는다.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국가 전체 순자산의 40% 넘는 돈을 만 60세 이상 노인이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액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만 60세 이상이 보유한 순자산은 2022년 3658조 원에서 2023년 3856조 원, 2024년 4307조 원으로 늘었다. 비율로 따지면 2023년에 전년 대비 5.4%, 2024년에는 11.7% 증가했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연 2% 정도인데, 같은 기간 노년층 자산이 10% 넘게 증가했으니 한국의 부는 노인층에 몰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인들이 소비, 투자 활동을 활발히 하면 경제 전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비교적 돈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자산 규모에 비하면 거의 안 쓴다고 봐야 한다. 본인이 가진 돈을 충분히 잘 쓰고 많은 것을 경험하면 훨씬 행복할 것 같은데, 왜 노인들은 돈을 안 쓰는 걸까.
    이에 대해 가장 보편적으로 통하는 답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다. 75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해 돈을 다 쓰면서 화려하게 살았는데, 막상 그 나이에 죽지 않고 건강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 ‘인생 3대 불행’으로 불리는 ‘노년 가난’이 시작된다. 노년에 돈이 없어 가난을 겪으면 그 전에 아무리 풍요롭게 살았더라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기 어렵다. 몇 살까지 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돈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재산이 일정 규모 이하인 경우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노후자금이 10억 원가량 있는 노인은 향후 몇십 년을 더 살 수도 있기 때문에 돈을 아껴야 한다. 하지만 자산이 몇십억 원을 초과하면 예상보다 오래 산다고 해도 빈털터리가 될 염려가 없다. 그 정도로 돈이 있으면 걱정 없이 쓰면서 살아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안 쓰는 것이다.
    부자 노인은 ‘돈 못 쓰는’ 부자
    요즘 내가 느끼는 건 나이가 들면 그냥 돈을 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돈을 쓴다는 건 새로운 경험을 의미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도전과 변화가 어려워진다. 젊어서는 새롭게 운동을 시작해 다리가 부러져도 몇 달 깁스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새로운 운동을 하다가 다리가 부러지면 평생 침대에 누워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변화를 시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부자가 되기 가장 쉬운 연령대는 노년이다. 청년, 중장년 때는 아무리 절약하려 해도 돈 쓸 일이 계속 생긴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늘어나는 지출 탓에 돈 모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 자연스레 소비가 줄면서 돈이 모인다. 그렇게 10년, 20년 이상 돈을 쌓아두다 보면 저절로 부자가 된다.
    한국은 빈곤 노인도 많지만 부자 노인도 많다. 특히 은퇴 전 고정 수입원을 만들어둔 사람이라면 수입은 일정한데 지출이 줄어 시간이 갈수록 부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젊어서 부자 되기가 힘든 것이지, 나이 들어 부자 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만 60세 이상 노인의 순자산 규모가 계속 증가하는 한국을 볼 때면 나이 들수록 부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돈을 쓰는 부자가 아니라 돈을 못 쓰는 부자가 된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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