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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푸른 숲 바라보기 2019. 2. 16. 06:20
    설해목(雪害木)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시는
    노승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 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
    늦은 저녁을 지어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 물을 떠다
    주었다.
    이 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 했지만,
    스님이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
    들어 주는 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 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 버리고 안 계신 한
    노사(老師)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노사의 상(像)이다.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인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 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서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밧티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 앙굴리말라를
    귀의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 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법정 스님 말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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